초여름의 푸르른 하늘에 감탄 연발하는 강정에서 다섯 번째 편지를 보내요. 뜬금없지만 밸런스 문제를 하나 내볼게요. 출처는 유튜브 채널 중 유재석씨가 진행하는 ‘핑계고’라는 프로그램인데요. 거기서 조세호씨가 요즘 유행하는 밸런스 게임이라며 소개해줘요.
하나는 백수인데 200만원 보장. 두 번째는 주 5일 근무인데 월급 500만원 보장. 어떠세요. 저는 듣자마자 ‘전자아닌가?‘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출연자 중 남창희씨만 전자였고, 나머지 유재석, 이동욱, 조세호씨는 후자를 고르더라고요. 그 이유를 들어보자니. 후자는 꼭 액수의 문제라기 보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반대로 전자는 꼭 일이 아니더라도 다른 성취감을 얻을 수 있거나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죠. 가령 주어진 돈으로 취미 생활을 한다거나 좋아하는 자격증을 따보거나 하는 일 말이에요.
물론. 출연자들이 월 500만원보다 훨씬 많이 받는 인기 연예인이기도 하고 그들에게 일과 노동이라는 경험과 먹고 살기 바쁜 일반 시민과는 비교하기란 어려운 지점이 있다고 생각은 들었습니다. 또 전자를 고른 남창희씨의 이유도 이해는 갔지만 개인적으론 좀 더 다른 이유들이 생각났어요.
우선, 저는 돈에 크게 얽매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에요. 주 5회 출근하고 500만원을 받는다면, 그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해야할 것이고 저의 존재가 조직의 노동력으로 치환될 확률이 높죠. 또 500만원을 받는다면 어떻게 써야할지 잘 모를 것 같아요. 그만큼 사회적 비용도 높아질 것이고 더 돈을 움켜지기 위해 골몰하지 않을까 괜한 우려도 되고요.
하지만, 백수이고 200만원을 받는다면 자급자족해서 집과 텃밭을 지어 기본적 의식주를 해결하고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거 해먹고 놀기 위한 비용, 돈이 꼭 필요한 누군가에게 언제든 줄 수 있는 여유 비용, 하고 싶은 것들을 이것 저것 실험하고 구상하는 데 비용을 쓸 것 같아요. 그것은 아마 이 세상을 더 이롭고 평화롭게 하는 것에 기여하면 좋을 것 같고요. 엄연히 따지면 ‘완전한’ 백수는 아닐 거에요.
한편 누군가는 요즘 같은 시대엔 필수인 재테크, 주식 등과 같이 돈을 더 많이 불릴 수 있는 방법을 택해야는 것 아닌가 할 텐데요. 저는 오늘만 사는 철 없는 사람인지라 돈을 늘릴 줄 모르기도, 그러고 싶지도 않은 마음이 큽니다. (그럼에도 돈을 잘 다루는 것과는 또 다른 이야기겠죠?)
그렇다면, 도시의 삶을 접고 비용이 덜 드는, 돈 없이도 살 수 있는 시골이나 강정(!)에서 사는 삶을 꿈꿔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런데 말이에요. 아직 저는 도시 속에서 해보고 싶은 것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그것은 세련된 도시가 주는 풍족한 인프라일 수도 있고요. 다양한 만남들을 통해 얻는 경험일 수도 있고요. 혹은 이전까지 준비했던 무포장 채소가게를 포함한 도심 속 대안 실험에 대한 꺼지지 않는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일을 그만둔 지 4개월 밖에 안되었는데 요즘 따라 새롭고 창조적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슬금슬금 들고요. 아마 강정에서 쉼을 잘 누린 덕일거에요.
그러다가도 친구들과 강정천에서 신나는 수영을 하고 있노라면. 반가운 얼굴들과 매일 인간띠잇기 춤을 추고 있노라면. 종환삼촌 사랑이 듬뿍 담긴 삼거리 식당 밥을 맛있게 먹노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새 수다 떨고 춤추고 노래 부르고 있노라면. 모기에 뜯길지언정 도란도란 새방밧 부엌에서 요리하고 즐거이 나눠먹고 있노라면. 고개 들어 하늘에 아름다이 수놓인 별들을 보노라면. 이 곳에 머물고 있는 것이 평화 자체라 느껴지노라면. 아무 생각 없이 이 강정에 눌러 앉고 싶다는 생각도 잔뜩 듭니다. (저 강정 많이 좋아하나봐요..)
밸런스 게임 이야기를 하다, 요즘 소란스러운 저의 마음들을 나누게 되었네요. 어느 덧, 다정한 강정마을에서 떠나야할 시간이 다가 오고 있어서 그런걸까요. 잠 들기 전, ‘아. 조금만 더 시간이 천천히 흘러갔으면 좋겠어.’ 하며 아쉬움에 사무치는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러나 저러나, 남은 하루하루를 더 알차게 살아야겠어요! 덧붙여, 여러분들의 밸런스 게임 답변과 이유를 보내 주세요. 시간 내어 재밌게 읽어볼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