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요양을 위해 본가로 왔습니다. 지난 편지를 보낼 때만 해도 아프긴 해도 강정에서 잘 버티며 지내면 괜찮지 않을까 했습니다만. 한동안 고생했던 친구의 ‘초기에 잘 쉬어야 나중에 후유증이 적다’는 조언을 받아 부랴부랴 짐을 싸고 날라왔습니다.
저는 20살이 되면서 대학 진학과 함께 서울에서 지냈어요. 고향이 경남인지라 꽤 멀기도 했고, 장시간 교통수단 이용 시 오는 피로감 등의 핑계(?)로 방학이나 명절 때만 몇 일 왔다 가는 철새처럼 살았죠. 20대 중반부터는 직장을 다니게 되면서, 최근에는 코로나 상황으로 더 발길을 줄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꽤 긴 시간을 집에서 복작복작 보내게 되었어요. 2주가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느끼는 생각과 감정들이 참 많습니다. 정겹고 반가운 우리 집이지만, 동시에 부대끼고 불편한 순간들도 마주하게 되어요.
특별히 모녀관계에 더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눈물을 그렁그렁하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떠올려봅니다. 10년을 떨어져 살며 전혀 다른 환경에서 듣고 배운 저의 건방진 자아가 더욱 굳세어져서 그런 것이겠지요. 페미니즘은 절 구원해주었지만, 엄마와의 간극은 더 멀어지게만 합니다. 한 때 편협한 열심분자였던 시기를 지난 저와 그런 과거의 딸을 그리워하는 독실한 신앙의 엄마의 대화는 매번 날이 선 채로 서로를 할퀴고요.
생각을 파고 파고 들다, 다다른 결론이 좀 있는데요. 비슷한 일로 어제 서울 새벽에는 아주 황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북한 미사일 관련 오발령을 내려 서울 시민들의 혼란을 가져온 22분의 순간 말입니다. 엄마와 대화를 하다 보면 그런 것들이 발견될 때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지옥에 대한 두려움,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의 심리를 볼모 삼아 종교의 권력을 더욱 견고히 하는 것 말이예요.
처음엔 엄마에게 서운했는데, 알아차릴수록 그렇게만 가르치는 목사들에게 분노가 나더라고요. 자극적인 선동방식으로 성도들을 주무르는 지도자들 말입니다. 물론 모든 목사님들이 그렇지 않습니다. 훌륭하신 분들도 많고요. 뿐만 아니라, 과거의 저 또한 그랬으니까요. 그렇게 생각을 전환해보니, 갈등이 꽤나 지난하고 소모적일 수 있겠다 싶었어요. 서로의 옳음에 골몰해서 불을 튀기기 보다는 그저 상대방을 존중해주고 더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앞으로의 관계에서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몇 년간 싸워왔던 갈등이라 아직 막막하지만 조금씩 천천히 풀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티격태격하며 지낼 때도 있지만 그것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오기 정말 잘했다 하는 순간 역시도 엄마와 같이 드라이브하며 장을 볼 때, 정성스러운 밥을 차려 주실 때, 함께 강아지를 돌볼 때, 사소한 농담하며 껄껄 웃어 넘길 때 서로 다정해집니다. 참으로 가족이라는 건 알다가도 모르겠는 복잡미묘한 사이인 것 같습니다.
잘 쉬고 있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요. 이런 저런 일도 있지만, 그럼에도 매끼 맛있게 잘 먹고 푸지게 자고 적당히 놀며, 한편으로 심심함에 몸부림 치며 그럭저럭 잘 지냅니다. 강정 바다에서 첨벙첨벙 수영하고 노래 부르고 춤추고 싶은 마음은 날로 커지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