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본 것도 죄가 될까요?"
지난 주 금요일에는 제주시로 올라가 황윤 감독님이 만든 <수라> 시사회에 참석했습니다. 공식 개봉은 6월 즈음으로 알고 있어요. 좋은 영화이니 꼭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저는 황윤 감독님의 이전 작품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보고 한동안 채식 지향 식사(페스코)를 했던 경험이 있어요. 짧은 2년이라는 시간이었지만 제 인생에 분명 큰 변곡점이 있던 시기였습니다. 처음으로 공장식 축산, 동물권에 대한 인식을 하게 된 계기였던 것 같아요. 그만큼 황윤 감독님의 작품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삶의 변화와 좋은 균열을 이끌어내는 힘을 가졌지요. 그래서 이번 영화도 그만큼 기대하고 봤던 것 같아요.
<수라>는 군산에 위치한 새만금 수라갯벌에 대한 다큐멘터리에요. 최근 전라북도는 수라갯벌을 간척해 2028년까지 새만금신공항을 건설하려는 계획을 진행 중입니다. 간척을 하고 공항을 지으면 새들의 서식지는 흙 아래 묻히게 되며, 조류 서식지를 비롯해 갯벌 기능을 잃게 되죠. 특히 멸종위기 조류인 저어새를 포함 많은 철새들이 수라갯벌을 중요 서식지, 이동 경로지로 여기고 있어요. 뿐만 아니라 공항이 지어지면 항공기와 새들의 이동경로가 겹쳐 치명적인 조류충돌 문제까지 이어지게 되는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죠.
<수라>를 본 다음 날, 그레이스 감독님의 <섬이 없는 지도>도 연이어 봤습니다. 군산의 수라갯벌과 제주의 비자림로, 강정의 연산호는 닮은 점이 참 많았습니다. 아름다운 생명과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것, 돌봄의 가치보다는 당장 눈 앞의 배부른 자본과 인간만의 바벨탑을 지어가는 모습들이 몸 서리쳐 느껴졌고요. 바닷물을 기다렸던 조개들이 결국 입을 벌리고 말라 죽는 장면과 몇 백년은 되어 보이는 나무들이 처참히 잘려나간 장면, 해군기지가 들어섬에 따라 연산호가 사라져가는 것들이 오버랩 되었어요.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이 결국 미군의 한반도 군사기지화를 위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처참했습니다. 그들에게 ‘안보’란 그저 생명을 파괴하고 위협하는 안보일 뿐입니다.
사실 <수라>를 본 이들이 단연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는 것 중 하나가 있습니다. ’동필‘은 수많은 도요새의 아름다운 군무를 본 적이 있습니다. 황홀한 경험이였죠. 하지만 간척사업 이후엔 그들을 만나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황윤 감독님이 이런 질문을 던져요. 힘들지 않으시냐고. 사실 어찌보면 간척사업이 거의 다 되어버려서 싸움은 끝났다고도 하고, 다시 이전의 갯벌처럼 될 가능성이 쉽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충분히 지칠법한 것이 당연하죠. 그 질문은 제가 늘 강정에서 던져온 질문이였어요. 이 곳에 당신의 삶을 드린 이유는 무엇인지. 마치 끝난 것 처럼 보이는 이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말이에요.
'동필'이 조심스럽게 입을 떼며 말했어요.
"아름다움을 본 것이 죄일까? 난 그걸 봤기 때문에 책임감이 생겨요."
아. 가슴 속에 있는 무언가가 쿵 하고 떨어져 긴 파장을 일으키는 기분이었습니다. 구럼비를 본 사람들이 그렇겠구나. 생명이 숨쉬는 숲을 본 사람들이 그렇겠구나. 형형색색의 연산호를 잃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그렇겠구나. 마지막 황윤의 나레이션과 함께 <수라>는 끝이 납니다. “동필이 말했다. 아름다움을 본 것도 죄냐고. 그럼 이제 나도 죄인이 된 걸까?”
황윤의 질문이 저에게로 바톤터치 되어 돌아왔습니다.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강정을 포함해 그동안 무수히 봐왔던 다양한 존재들의 살고자 하는 외침들을 알게 된 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다양한 삶의 방식 속에서 내가 걸어야 할 길은 무엇일까. 직접 아름다움을 보지 못했더라도 경험한 자들의 곁을 지키는 방법은 무얼까. 동정과 대상화 방식이 아닌 그들과 친구가 될 방법은 무얼까. 뭐 그런 생각의 생각의 생각이 꼬리를 물던 날이었네요.